유령을 대하는 방법

Ein Gespenst geht um in Europa – das Gespenst des Kommunismus. Alle Mächte des alten Europa haben sich zu einer heiligen Hetzjagd gegen dies Gespenst verbündet, der Papst und der Zar, Metternich und Guizot, französische Radikale und deutsche Polizisten.


Wo ist die Oppositionspartei, die nicht von ihren regierenden Gegnern als kommunistisch verschrien worden wäre, wo die Oppositionspartei, die den fortgeschritteneren Oppositionsleuten sowohl wie ihren reaktionären Gegnern den brandmarkenden Vorwurf des Kommunismus nicht zurückgeschleudert hätte?


Zweierlei geht aus dieser Tatsache hervor.


Der Kommunismus wird bereits von allen europäischen Mächten als eine Macht anerkannt.


Es ist hohe Zeit, daß die Kommunisten ihre Anschauungsweise, ihre Zwecke, ihre Tendenzen vor der ganzen Welt offen darlegen und dem Märchen vom Gespenst des Kommunismus ein Manifest der Partei selbst entgegenstellen.


                              <Karl Marx, Friedrich Engels,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1848>


 하나의 유령-공산주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구 유럽의 모든 세력들,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이 유령에 대한 신성한 사냥을 위해 뭉쳤다.


 자신의 적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반대당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그들보다 더 진보적인 반대당에게나 반동적인 적들에게 공산주의의 낙인을 찍는 비난을 되던지지 않았던 반대당이 하나라도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들에게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세계관, 그들의 목적들, 그들의 경향들을 전 세계 앞에 공개적으로 펼쳐 보이고, 유령에 대한 동화를 당 자체의 선언으로 대체할 절호의 시기이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엘스, 공산당 선언, 1848>

 

맑스와 엥엘스는 여기서 놀라운 수사학을 펴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이름은 공포와 테러의 대명사로서, 그 어떤 고정적 지시대상에도 결부되지 않은 채 하나의 부정적 낙인으로서, 이 대상과 저 대상 사이를 떠돌고 있다. 다른 모든 이들이 공산주의의 낙인을 서로에게 되던짐으로써, 즉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적합한 대상에 연결시킴으로써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테러를 진정시키려고 할 때 맑스와 엥엘스는 역으로, 공산주의가 적합한 대상을 지칭하지 않은 채 운위되고 있다는 그 사실로부터 바로 공산주의를 정립한다. 공산주의는 여전히 하나의 유령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유령성을 그 본질로 하는 하나의 실체이다. 이로써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부여될 수 있었던 보편적 권능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공산주의가 실체가 되어 등장한다.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테러를 가하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비난을 해대던 이들은 이제 역으로 공산주의 앞에서 공포와 테러를 경험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에도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혁명적 노동운동의 유령이. 모두가, 심지어 운동의 현장에 선 이들조차도 겁을 집어 먹고 그 유령을 몰아내려고 한다. 유령이 쫓겨난 자리에는 이기주의에 대한 비난만이 메아리치고 있다. 그러나 운동을 추동하는 것은 결국, 정부는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으로서 자본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인식, 정부나 회사의 사정이 어떻든 이 사태의 책임을 노동자가 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아닌가? 객관적으로 정부나 회사가 쌍용차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상황에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그러할 수 없다면, 그것은 현재의 체계가 자본과 그 이익을 보존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투쟁을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인간도 완전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움직일 수 없다. 그것을 정서적이라고 불러도, 도덕적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다른 무엇이 있다. 의식화된 형태이든, 그렇지 않든 쌍용차 투쟁의 근저에는 이러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으며,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열망이 있다.


 이 열망은 극단적 테러리즘과 위험한 복고주의의 상징으로 경원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은 이 열망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없고, 심지어 원한다고 의식하지도 않으려 할 때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적들이 나의 열망을 가지고 나를 공격할 때, 그 열망을 부정함으로써만 나를 방어할 수 있다면 그 방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그 열망에 진지해져야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쌍용차 투쟁은, 정부의 폭력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단계에 들어섰다.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패배가 완전한 상실의 경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적들의 낙인 도구로부터 투쟁의 열망들을 되찾기 위해서 맑스의 대담한 수사학으로부터 배워야 할 때이다.

by 라임 | 2009/08/06 14:26 | Ideencollag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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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비프리박 at 2009/08/12 11:37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입해서 읽어도 대략 엇비슷하게 읽힐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공산주의'라는 말은 현재 '좌빨' '좌파' '빨갱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는 거겠죠.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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